하나님 께 질문하는 것이 죄입니까?

기독교인은 성경에 복종하는 것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과 씨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합니다. 성서와 함께 진지하게 고투하는 것은 단지 지적인 운동이 아니라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적인 수준으로 만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삶에 적용하지 않고 정답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대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열매를 맺기 위해 지적으로 그리고 마음 수준으로 말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께 질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주님과 그의 계획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질문에 대해 질책을받는 대신 답을 얻었습니다. 그는 주님을위한 노래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시편 (시편 10, 44, 74, 77)에서 주님의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지만 말씀에서 진리를 찾는 마음의 질문을 환영하십니다.

그러나 주님 께 의문을 제기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은 죄입니다. 히브리서 11 장 6 절은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은 그가 존재하고 그를 진심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준다는 것을 믿어야한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울 왕이 주님 께 불순종 한 후에도 그의 질문은 대답되지 않았습니다 (삼상 1 : 28).

의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의 성품을 비난하는 것과 다릅니다. 정직한 질문은 죄가 아니지만 반항적이고 의심스러운 마음은 죄입니다. 주님은 질문에 겁 먹지 않으시 고 사람들이 그분과 친밀한 우정을 누리도록 권유 하시는데, 주된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입니다. 주님 께서 보시는 우리 마음의 태도는 그에게 질문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를 짓게합니까?

이 질문에서 문제가되는 것은 성경이 죄라고 명시 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성경이 직접 죄로 나열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성경은 잠언 6 : 16-19, 고린도 전서 1 : 6-9 및 갈라디아서 10 : 5-19에서 다양한 죄 목록을 제공합니다. 이 구절은 그들이 죄로 묘사하는 활동을 제시합니다.

하느님 께 질문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해야합니까?
여기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성경이 다루지 않는 영역에서 무엇이 죄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이 특정 주제를 다루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말씀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는지 물어 보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좋은지 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골로새서 4 : 5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은 단지 증기 일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을 세우는 데 유용한 것”(에베소서 4:29)에 우리의 삶을 집중해야합니다.

어떤 것이 확실히 좋은지, 선한 양심으로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축복 해달라고 주님 께 간구해야한다면, 고린도 전서 1:10, 마시거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하라. 고린도 전서 31:1에 비추어 당신의 결정을 검토 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의심한다면, 그것을 포기해야합니다.

로마서 14 장 23 절은 "믿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은 주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속되었고 그분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고전 1 : 6-19). 이전의 성경적 진리는 우리가하는 일뿐 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삶에서 어디로가는지도 안내해야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평가할 때 우리는 주님과 가족, 친구 및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평가해야합니다. 우리의 행동이나 행동은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양심을 침해하지 않도록 우리 지역 교회의 장성한 목사와 성도들의 재량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14:21; 15 : 1).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백성의 구세주 이시며 우리 삶에서 주님을 우선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야망, 습관 또는 오락이 우리 삶에 과도한 영향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만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러한 권위를 가져야하므로 (고린도 전서 1:6; 골로새서 12:3).

질문과 의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의심은 모든 사람이 사는 경험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심의 여지없이 나와 싸우며 마가 복음 9:24에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믿습니다. 내 불신을 도와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의심으로 인해 크게 방해를받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삶의 디딤돌로 여깁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의심을 극복하기위한 장애물로 여깁니다.

고전적인 휴머니즘은 비록 불편하지만 의심은 삶에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르네 데카르트는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되고 싶다면, 적어도 한 번은 인생에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의심해야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창시자는“모든 것을 의심하십시오. 당신의 빛을 찾으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그들의 조언을 따른다면 그들이 말한 것을 의심해야합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따라서 회의론자들과 거짓 선생들의 조언을 따르는 대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살펴 보겠습니다.

의심은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가능성이없는 것을 고려하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는 창세기 3 장에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했을 때 의심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 고 불순종의 결과를 명시하셨습니다. 사탄은 하와가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에있는 어떤 나무도 먹지 않겠다'고 말씀 하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의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창세기 3 : 3).

사탄은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와가 결과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확인했을 때, 사탄은 "당신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더 강력한 의심의 말인 부인으로 응답했습니다. 의심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게하고 그분의 심판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게하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인류의 죄에 대한 책임은 사탄이 아니라 인류에게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스가랴를 방문했을 때 그는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눅 1 : 11-17), 그가받은 말씀을 의심했습니다. 나이 때문에 그의 대답은 의심 스러웠고, 천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될 때까지 그가 침묵 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눅 1 : 18-20). 스가랴는 자연적인 장애물을 극복하는 주님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의심의 치료법
인간의 이성이 주님에 대한 믿음을 모호하게 할 때마다 그 결과는 죄 많은 의심입니다. 우리의 이유가 무엇이든 주님은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셨습니다 (고전 1:1). 하나님의 어리석은 계획조차도 인류의 계획보다 현명합니다. 믿음은 그분의 계획이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에 어긋나더라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Renée Descartes가 가르친 것처럼 의심이 삶에 필수적이라는 인본주의 적 견해와 모순되며 대신 의심이 생명의 파괴 자라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1 : 5-8은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 께 지혜를 구할 때 의심 할 여지없이 믿음으로 구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응답 성을 의심한다면 그에게 묻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구할 때 의심하면 우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아무것도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 : 6, "그러나 의심하는자는 바람에 날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의심 할 여지없이 믿음으로 구하라."

의심의 치료법은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들을 때옵니다 (롬 10:17). 주님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서 말씀을 사용 하시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과거에 어떻게 역사 하셨는지 기억해야합니다.

시편 77:11은“나는 여호와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네, 오래전의 기적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공부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께서 과거에 무엇을 하셨는지, 현재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과 미래에 그분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해하면 그들은 의심이 아닌 믿음으로 행동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 께 질문 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성경에는 의심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유명한 예로는 토마스, 기드온, 사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고 있습니다.

토마스는 예수의 기적을 목격하고 그의 발 앞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인이 죽음에서 부활했는지 의심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보기 전 일주일이 지났는데, 의심과 의문이 그의 마음 속에 떠 올랐습니다. 마침내 도마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요 20 : 24-29).

기드온은 주님이 그것을 사용하여 주님의 압제자들에 대한 추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의심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두 번 시험했으며 일련의 기적을 통해 자신의 신뢰성을 증명하도록 도전했습니다. 그래야 기드온이 그를 존경 할 것입니다. 주님은 기드온과 함께 가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삿 6:36).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두 인물입니다. 둘 다 평생 동안 신실하게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년에 아이를 낳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도록 설득 할 수 없었다. 이 약속을 받았을 때 두 사람은 그 전망을보고 웃었습니다. 아들 이삭이 태어나 자 아브라함은 주님에 대한 신뢰가 커져서 기꺼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창세기 17 : 17-22; 18 : 10-15).

히브리서 11 장 1 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 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 께서 자신이 신실하고 참되고 능력이 있음을 증명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없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서가 무엇인지, 무엇을 가르치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통해 적절한시기와시기가 아닌시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읽고, 연구하고, 상고하고, 선포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계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써 성경을 파고 질문을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우리 지역 교회에서 의심으로 투쟁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