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오늘날의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정도의 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필사적으로 사람들은 찾을 수 있는 모든 해결책을 통해 문제에 대한 구제책을 찾습니다. 우리 문화는 자기 계발서, 치료사, 시간 관리 세미나, 마사지 시술소 및 회복 프로그램(빙산의 일각에 불과함)으로 넘쳐납니다. 모두가 "더 단순한" 라이프스타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욥처럼 외칩니다. 고통의 날들이 나를 마주합니다. "(욥기 30:27).

우리 대부분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너무 익숙해서 스트레스 없이는 우리의 삶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세상에서 삶의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배낭을 등에 지고 그랜드 캐년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등산객처럼 그것을 짊어집니다. 배낭은 자체 무게의 일부인 것 같고 그는 그것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것이 어땠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다리는 항상 너무 무거웠고 허리는 항상 그 무게로 인해 아팠던 것 같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벗고 나서야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 배낭 없이는 얼마나 가볍고 자유로운지 깨닫게 된다.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배낭처럼 스트레스를 풀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삶의 바로 그 구조에 짜여진 것 같습니다. 피부 아래 어딘가에 숨어 있습니다(보통 견갑골 사이의 매듭). 그것은 우리가 가장 잠이 필요할 때인 밤 늦게까지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그것은 사방에서 우리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마 11:28-30) 그 말씀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지만, 그 말은 단순히 위안이 되는 말일 뿐이며, 사실이 아니면 본질적으로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방법만 알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쉼을 얻을 수 있습니까?

내게와…
스트레스와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의 삶은 진정한 목적이나 깊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목적과 평화와 행복으로 채우려고 애쓰면서 한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돌진할 뿐입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 입에 이르게 하여도 그 식욕은 끝이 없느니라”(전도서 6:7). 상황은 솔로몬 왕 시대 이후로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 뼛속까지 일하지만 더 많은 것을 원할 뿐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모른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 인생은 참으로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우리 각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짊어진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자신이 죽으면 결국 천국에 가게 될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모르기 때문에 이생에서 여전히 불안합니다. 우리가 누구든지 이생에서 환난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차피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여기서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거나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누구인지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깊이 파고 기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습니다. 홍수가 나매 큰 물이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치 못하더라”(눅 6:48) 예수님은 우리 집을 반석 위에 지으면 모든 것이 온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요, 그는 홍수가 급류를 타고 집에 부딪쳤다고 말했습니다. 핵심은 그 집이 예수님의 반석 위에, 그 말씀을 실천하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집은 예수님 위에 지어졌습니까? 당신은 그분에게 당신의 기초를 깊이 파고 들었습니까, 아니면 집이 급히 세워졌습니까? 당신의 구원은 당신이 한 번 드린 기도에 근거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분과의 헌신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당신은 매일, 매시간 그분께 나오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잠자고 있는 씨처럼 누워 있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더 이상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12:1-2

당신이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할 때까지, 당신의 기초가 그분 안에 깊이 파기 전까지는 당신의 삶에 대한 그분의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결코 분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풍랑이 닥치면 반드시 닥치는 대로 걱정하고 소란을 피우며 허리가 아픈 채 돌아다닐 것입니다. 우리가 압력을 받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삶의 폭풍은 우리가 세상에 내놓는 미묘한 겉치레를 씻어내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폭풍우가 우리를 덮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로 돌이키고 평안할 때 결코 감지할 수 없었던 죄에서 깨끗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시련 중에 그분께 돌이켜 부드러운 마음을 받을 수도 있고, 돌아서서 마음을 완악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는 우리를 유연하고 자비롭게 만들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하게 만들거나, 화를 내고 연약하게 만들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믿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31) 궁극적으로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는 두 가지뿐입니다: 두려움과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개인적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기 전까지는 우리는 삶의 결정을 두려움에 두게 될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걱정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두려움의 한 형태입니다. 걱정은 두려움의 한 형태입니다. 세상적인 야망은 무시당하고 실패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많은 관계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허영심은 매력적이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합니다. 탐욕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분노와 분노도 정의도, 탈출구도, 희망도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한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성품과 정반대인 이기심을 낳고 이기심은 다른 사람에 대한 교만과 무관심을 낳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죄이며 그에 따라 취급되어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우리 자신(두려움)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이는 불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 늦게까지 깨어 먹지 못하여 고생하느니라”(시편 127:1-2).

성경은 모든 것을 버릴 때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만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사랑은 셋 중에 제일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힘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케 되지 못하였느니라”(요일 1:4) 우리가 염려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염려의 눈을 바라보고 뿌리부터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면 하나님 대신 붙들었던 작은 두려움과 염려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무자비하지 않다면 죄도 우리에게 무자비할 것입니다. 그는 가장 사악한 노예 주인으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더 나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 22절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이생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작은 것에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고 가시가 말씀의 씨를 질식시키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악마는 그가 이 세상의 모든 염려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결코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삶에 주어진 소명을 이행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자리에 훨씬 못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그가 요구하는 전부입니다. 우리가 그를 신뢰하고, 그를 우선시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다른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 낭비가 걱정됩니다!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걱정한다면 걱정을 90% 줄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41-42에 있는 주님의 말씀을 의역하면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절대 빼앗을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단 한 가지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의 발 앞에 앉기를 선택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서 배우십시오. 이와 같이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면 참된 부의 창고를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매일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그곳에 저장된 생명의 씨앗을 훔쳐가고 걱정은 그 자리에 남길 공중의 새들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의 물질적 필요는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찾을 때 고려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더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자기 일을 생각할 것이요 그날이 나쁠 때까지 충분합니다. 마태복음 6:33

하나님은 매우 강력한 도구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분의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입니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영적 검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두려움을 분별하고 거룩한 것과 악한 것을 뚜렷이 구분하며 지나친 것을 잘라내고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우리의 육체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삶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신뢰로 특징지어집니다.

내가 너희에게 끼치는 평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마음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한복음 14:27

내 농담을 들어줘...
그분의 자녀들이 그러한 비참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시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괴롭게 하겠습니까! 이생에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유일한 것, 그분은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죽음을 통해 이미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사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속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기꺼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기꺼이 합니까? 기꺼이 우리의 생명을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멍에를 메겠습니까? 우리가 그의 멍에를 메지 않으면 다른 멍에를 메고 걷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나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마귀를 섬길 수 있습니다. 중간 지대도 없고 세 번째 옵션도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죄와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날 길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 죄악 앞에 속수무책이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만 저주하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쫓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부드럽고 인내심이 많으시며, 단 한 사람을 위해서도 기꺼이 죽지 않으십니다. 상한 갈대는 꺾이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는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태복음 12:20). 멍들고 부서졌나요? 당신의 불꽃은 깜박입니까? 지금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목마른 사람들은 모두 오십시오. 물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돈 없는 자도 와서 사 먹으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왜 빵이 아닌 것에 돈을 쓰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일을 합니까? 내 말을 듣고 좋은 것을 먹으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가장 기름진 음식으로 즐거워하리라 귀를 가지고 내게로 오라. 당신의 영혼이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55:1-3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결국 우리 모두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환상적인 힘을 가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시간 동안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고 우리 삶에서 그분의 무수한 축복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축복을 세어라"라는 오래된 격언은 정말 사실입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는 너무나 많은 축복이 엮여 있어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볼 눈조차 없습니다. 당신의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모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통장에 무엇을 기록하든지, 우리 집안이 무엇을 말하든, 우리의 일기 예보 등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바울과 실라가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간수에게 발이 묶인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행 16:22-40).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채찍질과 조롱과 공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에 누가 듣거나 판단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큰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그를 찬양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마음은 곧 주님의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생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두 사람의 노래가 사랑의 강물처럼 그들을 통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곧 온 사방에 따뜻한 빛의 물결이 일었다. 그곳의 모든 악마는 지극히 높으신 분에 대한 찬양과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공포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큰 지진이 감옥을 뒤흔들고 문이 활짝 열리며 모든 사람의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칭찬 신! 칭찬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항상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서 마음을 떼고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변화된 삶의 기적 중 하나는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항상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는 것을 그는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축하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요?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지 않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으며 감람나무가 흉년이 들고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나는 나의 구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그것은 내 발을 사슴 발처럼 만들고 높이 올라갈 수 있게 해줍니다. 하박국 3:17-19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당신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분;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영혼을 기쁘게 하시는 이시니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라. 시편 103:1-5

당신은 당신의 삶을 주님께 다시 헌신하기 위해 지금 시간을 가지지 않습니까? 그를 모르면 마음 속으로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를 알고 있다면 그를 더 잘 알고 싶다고 말하십시오. 걱정, 두려움, 불신앙의 죄를 고백하고 그 자리를 믿음, 소망, 사랑으로 대신해 주기를 원한다고 그에게 말하십시오.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삶에 스며들고 계속해서 우리를 귀중한 십자가, 살아 있는 말씀으로 되돌리기 위해 성령의 능력과 힘이 필요합니다. 이 순간부터 하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신곡과 말할 수 없는 영광의 기쁨으로 당신의 마음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그러면 너는 계속해서 마구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자랄 것이다. 말라기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