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일용 할 양식"을 위해기도해야합니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

기도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휘두르도록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기적적으로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마음이 상한 이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끔찍한 상황과 매일의 극적인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염려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매일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끝까지 항해해야 할 필요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일용할 양식”은 음식과 다른 물리적 수단으로만 공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매일이 충분한 걱정을 가져오기 때문에" 앞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영혼의 배를 신실하게 채우십니다.

주기도문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유명한 문구는 예수께서 유명한 산상 수훈 중에 가르치신 주기도문 또는 주기도문의 일부입니다. RC Sproul은 “주기도문 청원은 우리에게 겸손한 의존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날마다 우리를 지탱해 달라고 간구하라고 가르칩니다.”라고 썼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직면한 다양한 행동과 유혹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기도할 모범을 주셨습니다. NIV 연구 성경은 “일반적으로 '주기도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제자들의 기도'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NIV 연구 성경은 설명합니다.

빵은 유대 문화에서 중요했습니다. 예수께서 산상 수훈에서 말씀하신 제자들은 모세가 그들의 조상을 광야로 인도한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매일 먹을 만나를 어떻게 공급하셨는지 기억했습니다. “음식을 구하는 기도는 고대에 가장 흔한 기도 중 하나였습니다”라고 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에서는 설명합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자기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과거의 공급을 기억함으로써 현 상황에서 강해졌고, 현대 문화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가계 수입원을 부양자라고 부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라 사람들은 매일 나가서 그 날을 위해 충분히 모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그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내 말을 따르는지 보리라”(출 16:4).

성경적으로 정의된 빵의 그리스어 번역은 문자 그대로 빵 또는 모든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이 고대 단어의 어근은“올리다, 올리다, 올리다; 올린 것을 짊어지고, 올린 것을 들고, 가지고 가십시오.” 예수님은 이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은 그 빵을 문자 그대로 그 순간의 굶주림과 관련시켰고, 하나님께서 매일 그들에게 주신 만나로 광야를 통해 그들의 조상들이 과거에 공급한 것과 연관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의 구세주로서 그들을 위해 짊어질 매일의 짐을 가리키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매일 짊어져야 할 모든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를 목 졸라 죽이고 강하게 했을 모든 죄,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 – 그분이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힘과 은혜 안에서 걷기 때문에 매일 탐색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압니다. 우리가 하는 것, 가진 것,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승리하신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종종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분은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의도적인 말씀과 그분이 행하신 기적에 엮인 사랑의 층층이 층층이 계시에 더 신실하십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집하고 있는 방식으로 군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풍성하게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선한 일에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고린도 후서 2 : 9).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음식에 대한 육체적 필요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굶주림과 노숙자가 우리 세상을 계속해서 황폐화시키고 있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음식이나 거처의 부족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그분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필요가 있음으로 격려됩니다. 걱정, 두려움, 대결, 질투, 질병, 상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 일주일 일정을 채울 수 없을 정도로 – 모두 당신의 안정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분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신체적 필요는 물론 지혜, 힘, 위로, 격려도 필요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정죄받아야 할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키시거나, 우리 마음에 쓰라림이 되지 않도록 은혜와 용서를 베풀라고 상기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의 은혜는 오늘 유효합니다. 미래나 내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Desiring God의 Vaneetha Rendall Risner는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적인 영양 섭취의 신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과다한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습니다.

세상은 매일 우리에게 걱정할 많은 이유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혼돈과 두려움으로 지배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통치하십니다. 그분의 시야나 주권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할 때까지 왜 우리가 해야 합니까?
“나는 생명의 빵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6)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생수요 생명의 떡입니다. 매일의 공급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겸손은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분의 자녀인 우리가 누구인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매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필요를 위해 그분을 의지해야 함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John Piper는 설명합니다. 우리가 매일 그분께 의지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겸손한 정신을 길러줍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그분에게 의지하는 매일의 선택입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했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어려운 날을 견디는 초자연적인 힘과 지혜를 받고 평안한 날을 맞이하는 겸손과 만족을 얻습니다.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구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은혜롭게 매일을 탐색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우리 시대에 어떤 시간이 있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는 결코 흔들리거나 빼앗길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그의 영광과 선하심으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2:1)라고 썼습니다. 날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