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위로를 찾으라

테러 공격, 자연재해, 전염병 등 극심한 고통의 시기에 우리는 종종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는 큰 질문을 던집니다. “좋은 일이 생길까요?” “우리는 언젠가 안도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행 13:22)으로 묘사된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을 결코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질문은 그의 애도 시편 중 하나의 시작 부분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나를 영원히 잊을 건가요? 언제까지 당신의 얼굴을 나에게서 숨기시겠습니까? ”(시편 13:1). 다윗은 어떻게 그렇게 담대하게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다윗의 질문을 통해 그의 믿음이 부족했음을 드러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틀릴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정반대입니다. 다윗의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깊은 사랑과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마찬가지로, 당신이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할 때, 우리도 다윗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위로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위로의 원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에도 깊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 우리는 비록 천국 이쪽에서는 안도감을 보지 못하더라도 천국에서는 온전함과 치유를 보게 될 것임을 압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의 환상은 아름답습니다. “더 이상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옛 질서가 지나갔음이니라.”

다윗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그 역시 영원에 관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음식과 안식과 인도를 주시고 원수와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목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이 다윗의 최후의 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편 23:6, KJV). 무엇이 더 좋을까요? 다윗은 계속해서 이 질문에 강력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의 생명은 끝날지라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보살핌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주님의 집에 처소를 예비하겠다고 약속하셨고(요한복음 14:2-3 참조) 그곳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살핌은 영원합니다.

오늘날 당신도 다윗처럼 어려움과 불평의 한가운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헌신이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새롭게 하고 집중하고 새롭게 할 때 위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눈물을 통해 위로를 받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살아있는 희망.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시련과 시련을 겪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산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고통과 영광.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고난의 시기에 위로를 얻습니다.
진부함 그 이상입니다. “모든 일을 행하여 선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약속에는 우리가 겪는 가장 어려운 시기도 포함됩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줍니다.